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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5일 금요일

흰 종이수염

소설의 인물 유형
1) 중심 인물 / 부수적 인물
2) 주동 인물 / 반동 인물
3) 전형적 인물 / 개성적 인물
4) 평면적 인물 / 입체적 인물

(가) "오-이는 십, 오-삼 십오, 오-사 이십 ......"
동길이는 중얼중얼 구구단을 외면서 신작로를 걸었다. 이마에 맺힌 땀이 뺨을 타고 까만 목줄기를 흘러내렸다.
"아아, 덥다."
[여름]
동길이는 손등으로 아무렇게나 땀줄기를 훔쳤다. 읍 들머리에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 밑에 깔린 자갈들이 손에 잡힐 듯 귀물스럽게 떠올라 보이는 맑은 시내였다. 그 위로 인도교와 철교가 나란히 지나가고 있었다.
다리에 이르자, 동길이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히야, 용돌이 짜식 벌써 멱감고 있대이. 학교는 그만두고 짜식 참 좋겠다."
그리고 쪼르르 강둑을 굴러 내려갔다.
동길이를 보자, 용돌이는 물속에서 배꼽을 내밀며,
"동길아! 인마, 니 핵교는 안 가고, 히히히......"
웃어 댄다.
"갔다 왔다, 짜식아"
"무슨 놈의 핵교를 그렇게 빨리 갔다 오노?"
"돈 안 가져왔다고 안 쫓아내나."
"뭐, 돈?"
"그래, 사친회비 안 냈다고 집에 가서 어무이를 데려오라 안 카나."
"지랄이다, 지랄. 그런 놈의 핵교 뭐 할라꼬 댕기노? 나같이 때리챠 버리라구마."
[1950년대 경상도]
[동길이 : 가난함]
"그렇지만 인마, 학교 안 댕기면 높은 사람 못 된다. 아나?"
"개똥이다 캐라, 흐흐흐......"

(가) 용돌이와 학교 이야기를 나누는 동길이

(나) 그리고 용돌이는 개구리처럼 가볍게 물속으로 잠겨 버린다. 동길이는 물기슭에 서서, 때에 전 러닝셔츠와 삼베 바지를 홀랑 벗어던졌다. 이때,
"꽤애액!" / 기적 소리도 요란하게 철교 위로 기차가 달려들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기차였다. 동길이는 후닥닥 철교 쪽으로 뛰었다. 용돌이란 놈도 물에서 뿔뿔 기어나왔다.
커더덩커더덩...... 철교가 요란하게 울리고, 그 위로 시커먼 기차가 바람을 일으키며 신나게 달려간다. 차창마다 사람들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어떤 창구에는 철모를 쓴 국군 아저씨가 담배 연기를 '푸우' 내뿜고 있는 것이 보인다. 동길이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 만세!"
[6.25 전쟁 직후]
[반가움]
그리고 용돌이를 돌아봤다. 용돌이란 놈은 까닭도 없이 대고 주먹으로 감자를 내지르고 있다. 고약한 놈이다.
동길은 웬일인지 기차만 보면 좋았다.
'울 아부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사라져 가는 기차 꽁무니를 바라보며 동길이는 잠시, 노무자로 나간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뻐근했다.

(나) 기차를 보며 아버지를 생각하는 동길이

(가) 집 사립문 앞에 이르자, 동길이는 흠칫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도 아니었다. 남자였다. 동길이는 조심조심 사립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인기척에 후딱 뒤를 돌아본 어머니는 마루에 누워있는 사람을 눈으로 가리켰다. 어머니의 두 눈에는 슬픈 빛이 서려 있었다.
동길이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루에 누워 있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부지!" / 동길이는 얼른 누워 있는 아버지 곁으로 가까이 갔다. 아버지는 자고 있었다. 그러나 동길이는 아버지를 향해 꾸벅 절을 했다.
'아까 그 기차를 타고 오신 모양이지? 헤 참, 그런 줄 알았으면 얼른 집에 올걸......'

(가) 집에 돌아온 아버지를 발견한 동길

(나) 꼬박 2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 동길이는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따. 시꺼멓게 탄 얼굴에 움푹 꺼져 들어간 두 눈자위, 그리고 코밑이랑 턱에는 수염이 지저분했다. 목덜미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입언저리에는 파리 떼가 바글바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줄도 모르고 '푸푸' 코를 불면서 자고만 있엇다. 동길이는 파리란 놈들을 쫓았다.
어머니가 조심스러운 눈길로 동길이를 힐끗 돌아본다. 집에 와서 갈아입었는지 아버지의 입성은 깨끗했다. 징용에 나가기 전, 목공소에 다닐 때 입던 누런 작업복 하의에 삼베 상의 ...... 그런데
"에?"
이게 웬일일까? 동길이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동길이의 놀라는 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후유' 한숨을 쉴 따름이었다. (후략)

동길이는 떨리는 손으로 한쪽 소맷 부리를 들추어 보았따. 없다. 분명히 없다. 동길이는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어무이, 아부지 팔 하나 없다."
"..."
"팔 하나 없어, 팔!"
"..."
"엉?"
"..."
말없이 돌아보는 어머니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흥건히 괴어 있었다. 동길이는 아버지가 슬그머니 무서워지는 것이었다. 어머니 곁으로 가서 부엌문에 붙어 서서도 곧장 아버지의 한쪽 소맷자락을 힐끗힐끗 건너다 보았다.

(나) 한쪽 팔이 없는 아버지

(다) 어머니는 또 한 번 한숨을 쉬면서 함지박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밀가루 수제비를 뜨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떨어져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수제비를 보자, 동길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꿀꺽 침을 삼켰다. 아버지의 팔뚝 생각 같은 것은 이미 없었다.

(다) 배고픔에 아버지의 팔뚝에 생각을 버린 동길

(가)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와서 아버지 앞에 놓으며,
"자아, 그만하고 어서 저녁이나 드이소."
했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밥을 떠올릴 생각은 않고 연방 떠들어 댄다.
"내가 비록 이렇게 팔이 하나 없어지긴 했지만, 이놈아, 니 사친회비 하나를 못 댈 줄 아나? 지금까지 밀린 것 모두 며칠 안으로 장만해 준다. 방학할 때까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장만해 준단 말이다. 오늘 너거 선생님한테도 그렇게 약속했다. 문제 없단 말이다.
애비의 이 맘을 알고 니가 더 열심히 핵교에 댕기야지, 나 핵교 때리챠 버릴랍니더가 다 뭐꼬? 이눔으 자식! 그게 말이라고 하는 기가?"
동길이는 그만 울먹울먹해졌다. 그러나 한사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가) 학교에 가서 사친회비 문제를 해결하고 온 아버지

(나) 아버지는 밥으 몇 숟갈 입에 떠 넣다가 별안간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이번에는 어머니에게,
"이봐, 나 오늘 취직했어, 취직. 손이 하나 없으니까 목수질은 못 하지만 그래도 다 써먹을 데가......"
정말인지 거짓부렁인지 알 수는 없는 소리를 대고 주워섬긴다.
"아니, 참마로 카능교? 부로 카능교?"
"허, 부로 카긴 와 부로 캐. 내가 언제 거짓말하더나?"
"..."
"극장에 취직이 됐어. 극장에......"
"뭐, 극장에요?"
"그래, 와. 나는 극장에 취직하면 안 될 사람이가? 그것도 다 김 주사 덕택이란 말이여, 팔뚝을 한 개 나라에 바친 그 덕택이란 말이여, 으흐흐흐.....
내일 나갈 적에 종이로 쉬염을 만들어 갖고 가야 되. 바로 이 종이가 쉬염 만들 종이 앙이가."
동길이가 책보와 함께 받아 가지고 있는 흰 종이를 숟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극장에 취직했다고 말하는 아버지

(다) 때마침 저녁 손님을 부르는 극장의 스핔 소리가 우렁우렁 울려 왔다.
"을씨고, 저봐라. 우리 극장 선전이다. 이래 봬도 나도 내일부턴 극장 직원이란 말이여, 직원. 으흐흐"
그러고는 벌떡 일어서서 흘러오는 노랫소리에 맞추어 우쭐우쭐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나밖에 없는 팔을 대고 내저으며 제법 궁둥이까지 흔들어 댄다. 꼴불견이다. 동길이는 낄낄낄 웃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아이구, 무슨 놈의 술을 저렇게도 마셨노? 쯧쯧쯧......" / 하고 혀를 찼다.
'아리아리랑 시리시리랑......' 하며 돌아 쌓던 아버지는 그만 방 아랫목에 가서 벌떡 드러누우며 "아으흐." / 하고 괴로운 소리를 질렀다.
"밥 그만 잡숫능교? / 어머니가 묻자 / "안 먹을란다." 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는 훌쭉훌쭉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두 눈에서 솟구친 눈물이 양쪽 귓전으로 추적추적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동길이는 도무지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덩달아 코끝이 매워 왔다.

[극심한 내적 갈등]

(다) 변덕스럽게 행동하는 아버지

(가) 사람이었다. 사람이 가슴 앞에 큼직한 광고판을 매달고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등에도 똑같은 광고판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 머리에는 알롱달롱하고 쭈뼛한 고깔을 쓰고 있었고, 얼굴에는 밀가룬지 뭔지 모를 뿌연 분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턱에는 수염이 허옇게 나부끼고 잇었다. 아주 늙은 노인인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가) 광고판을 매단 사람을 보고 신기해하는 동길이

(나) 그리고 메가폰을 입에서 뗀 그 희한한 사람의 시선이 동길이의 시선과 마주쳤다. 순간, 동길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뒤통수를 야물게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희한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동길이와 눈이 마주치자 약간 멋쩍은 듯했다. 그러고는 얼른 시선을 돌려 버리는 것이었다.
동길이는 코끝이 매워 오며 뿌옇게 눈앞이 흐려져 갔다. 아이들은 더욱 신명이 나서 떠들어 댄다.
"아아, 오늘 밤에는 쌍권총입니다."
"아아, 쌍권총을 든 사나이,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소리에 섞여 분명히, / "동길아! 너그 아부지다. 너그 아부지 참 멋쟁이다."
하는 소리가 동길이의 귓전을 때렸다. 용돌이란 놈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동길이는 온몸의 피가 얼굴로 치솟는 듯했다. 주먹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부리쳤다. 뿌옇던 눈앞이 확 트이며 얼른 눈에 들어온 것은 소리를 지른 용돌이가 아닌 창식이란 놈이었다. 요놈이 나무 꼬챙이를 가지고 아버지의 수염을 곧장 건드리면서,
"진짜 아이다야. 종이로 만든 기다. 종이로." / 하고, 켈켈 웃어 쌓는 것이 아닌가?
동길이는 가슴속에 불이 확 붙는 것 같았다. 순간 동길이의 눈은 매섭게 빛났다. 이미 물불을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살쾡이처럼 내달을 따름이었다.
"으악!"

(나) 아버지를 놀리는 창식이에게 달려드는 동길이

(다) 창식이는 이제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윽! 윽!' 넘어가고 있었다.
"와 이카노? 와 이카노? 잉! 와 이캐?"
동길이 아버지는 후닥닥 광고판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하나 남은 손을 대고 내저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턱에 붙였던 수염의 실밥이 떨어져서 흰 종이수염이 가슴 앞에 매달려 너풀너풀 춤을 춘다.
"이놈으 자식이 미쳤나, 와 이카노? 와 이캐 잉?"

[시원치 않은 끝]

갈래 : 현대 소설, 단편 소설
배경
: 시대 - 6.25 전쟁 직후
: 공간 - 경상도 시골 마을
주제
: 6.25 전쟁 직후의 가난하고 참담했던 삶의 모습과 그 극복 의지

흰 종이 수염의 상징적 의미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는 노력
-현실적 고난을 극복하려는 삶의 의지
-아버지의 고달프고 힘겨운 생활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의 비극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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